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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현송월을 대표로 한 올림픽 예술단 사전점검단 파견을 하루 중지시킨 것은 '대북 제재' 거론에 대한 불만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실무 문제들을 놓고 '대북제재위반'이니 뭐니 하는 잡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북 대표단 체류비용 지원, 고려항공 이용 등에 대해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제재위반 여부니 뭐니 하는 경망스러운 언행들이 북남관계 개선의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 안팎과 언론에서 대북 지원이 유엔 제재와 상충할 가능성이 지적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 참가를 밝힌 것은 현재 수준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면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며, 제재를 각개 격파하기 위한 첫 대상으로 한국 정부를 고른 것이란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유엔 대북 제재는 10년 이상 계속됐으나 북의 핵개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국이라는 구멍 때문이었다. 제재 무용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발사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의 핵미사일이 중국 자신의 국익을 위협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북이 수입하던 휘발유·경유 등 정제유(油)의 90%가 차단됐고, 북 주요 수출품인 석탄·철광·섬유 등이 모두 막혔다. 연간 5억달러 이상씩 벌어주던 해외 파견 노동자 6만여 명도 2년 안에 모두 철수해야 한다. 안보리 제재가 빈틈없이 가동되면 올해 북한 수출은 예년의 9분의 1에 그칠 것이다. 김정은으로선 비트코인 해킹 말고는 돈 나올 구멍 대부분이 막힌 상황이다.

중국이 9일 선양의 칠보산 호텔을 전격 폐쇄한 것은 북한에 금전적 손해 이상의 충격을 줬을 것이다. 칠보산 호텔은 중국 내 북한 공작 거점이다. 대남 사이버 공격이 주로 이곳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6일부터 철강·기계 수출도 전면 금지했다. 북·중 최대 무역 도시인 단둥에선 "못 하나도 북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중국이 지금의 유엔 제재만 충실히 지켜도 대외 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 작년 11월 북·중 무역액은 3억8800만달러(약 42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감소했다. 북한의 대중 수출은 62% 줄었다. 최근 보도된 것처럼 중국과 북의 해상 밀무역도 미국의 인공위성에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 내 석유·식량 가격에 아직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대북 제재가 별 효과가 없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평양의 특권 집단을 제외하고는 전 주민이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는 북한 현실에서 지금 수준의 대북 제재가 수년간만 계속되면 결국 김정은 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김정은이 잘 안다. 김정은에게는 대북 제재 무력화가 지상 목표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현송월 파견 일시 중지 소동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를 겨냥한 북의 대북 제재 이완 책동은 올림픽 후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올림픽 참가처럼 남북 화해와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걸고 접근할 것이다. 북핵은 대화와 협상으로 폐기시켜야 한다.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희미하지만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북 기만 전략에 넘어가지 않고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고 더 철저하게 단속하면 전쟁 없이 북핵을 해결하는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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