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 나온 지 곧 1년이 된다. 작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 판단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인용했다. 그에 따라 조기 대선을 실시했다. 5월 9일 실시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41.1%를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된 반면 보수 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했고,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각각 24.0%, 6.1%를 얻었다. 두 보수 후보의 득표율을 합쳐도 30%밖에 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보수 정치의 몰락이 확인되었다. 이후 1년 사이에 야당이 된 보수 정당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취임 이후 줄곧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대북(對北) 정책이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
아주 긴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하늘의 선녀가 천년에 한 번 땅에 내려와 집채만 한 바위를 옷깃으로 한번 스치고 올라간다. 그렇게 해서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겁이다. 반면 아주 짧은 시간을 찰나(刹那)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語)에서 온 불교 용어다. 손가락 한번 튕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어떤 계산법에 따르면 0.013초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평창에서 벌어지는 동계올림픽은 찰나의 게임이다. 일본은 피겨 간판 하뉴 유즈루가 환상적인 4회전 점프 기술로 첫 금메달을 선사해 열광하고 있다. 보통 4회전 점프에 드는 체공(滯空) 시간은 0.6~0.7초다. 이 시간에 스케이터는 점프 높이, 회전 속도, 몸의 기울기 등을 완벽하게 계산해 얼음 위로 내려와야 한다. 조..
1937년 4월 18일.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사무촉탁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는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나무뿌리를 캐던 농부가 우연히 문양전을 발견, 신고한 게 계기가 되어 보름간 긴급 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조사 대상지는 야트막한 야산의 서쪽 사면이었는데, 농장이 들어서면서 원지형이 크게 훼손됐고 오래되지 않은 무덤 20여 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발굴할까 고민하다 유물 발견 지점부터 파보기로 했다. 교란된 구덩이를 기점으로 북으로 가면서 흙을 조금씩 제거하니 기와편과 점토를 교대로 쌓아 만든 담장 기초 시설이 노출되기 시작했고 북쪽으로 9m나 이어졌다. 담장 시설 바깥쪽을 더 파내자 문양전(文樣塼) 30개가 보도블록처럼 깔려 있었다. 물로 씻어가며 문양을 표출..
'행복의 비결'은 뭘까요?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대답을 들어봅니다. "자유입니다(The secret of happiness is freedom)." 그렇다면 그가 '자유의 비결'은 뭐라고 했을까요? "용기입니다(The secret of freedom is courage)." '제이콥의 거짓말(Jakob the Liar· 사진)'은 자유와 행복을 빼앗긴 유대인을 지켜주려고 목숨까지 건 빵장수 제이콥의 영웅담입니다. 영화는 그가 들려주는 유머로 막을 엽니다. "히틀러가 묻습니다. "내가 언제 죽느냐?" 점쟁이 왈, "유대인 경축일에." 독재자가 이어 묻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 점쟁이 왈, "너 죽는 날이 유대인 경축일이 될 거니까." 1944년 겨울 독일군이 주둔한 폴란드의 어느 유대인 격리 구..
일각에는 최씨가 개인적 체험을 일반화해 문단 전체 문제로 침소봉대했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문화계에선 '미투' 이전인 2016년부터 성추행 폭로가 쏟아졌다. 저명 원로 소설가, 유력 미술관 큐레이터가 사과문을 올렸다. 어느 시인은 한 계간지에 "○○○는 젊은 여자 후배 시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점수를 매겨보자고 했다"는 등 문단 성희롱 실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성추행 고발이 튀어나온다. 여검사들의 폭로에 이어 작년 문재인 대통령 방미(訪美)에 동행했던 청와대 직원이 여성 인턴을 성희롱하다 징계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여성 국회의원, 도의원까지 '미투'에 뛰어들고, 기업 총수가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다. 남녀 평등한 새 사회의 룰과 ..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이다. 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한민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세 사건을 잇달아 기념하게 된다. 모두 우리가 정성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순서대로 하면 먼저 맞게 되는 정부 수립을 기념한 뒤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순리(順理)를 따르지 않고 있다. 1월 30일 국무회의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된 대통령령(令)을 심의·의결했다. 각계 인사 100명 이내로 구성되는 대통령 소속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실무를 담당하는 기념사업추진기획단이 설치되며 관련 부처 간 협의회도 운영된다. 1년 넘게 남은 3·1운동과 ..
50대 중반 부부는 매일 티격태격했다. 아들은 군대, 딸은 여대 다닌다. 자식이 커서 제 할 일 하니, 문제는 부부다. 20여년 같이 살면서 여러 고비 넘겼고, 폐경기의 혼란스러움도 견뎠건만, 이제 와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 꼼꼼한 성격 탓에 늘상 하던 아내 잔소리도 줄었는데 말이다. 활발했던 아내는 점점 시무룩해졌다. 남보다 더 크게 기뻐했고, 슬퍼했던 성향이 변했다. 매사가 편평해졌다. 여자는 아내로 해야 할 일도 제쳐 놨고, 남자는 집보다 밖으로 돌았다. 서로 불평과 불만이 충돌했다. 마침내 금기어인 '이혼'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아내가 발목을 접질려 복사뼈에 금이 갔다. 정형외과 병원서 간단한 수술에 앞서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호르몬 이상이 발견됐다. 갑상샘 자극 호르몬이 크게 올라 있었다. 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탈북자 9명을 만난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트럼프는 국정 연설에서 소개했던 '목발 탈북자' 지성호씨와 미국 내 탈북 기자, 김정일 비자금 부서 출신 탈북자 등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한다. 트럼프는 국정 연설에서 북한 관련 대목을 "잔혹한 북한 독재 권력보다 자국민을 잔인하게 억압한 정권은 없었다"는 말로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트럼프의 새 무기가 탈북자와 북한 인권"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1995년 보스니아, 1999년 코소보에 대해 인도주의적 위기를 이유로 군사 행동을 취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옥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고통과 경험을 공유하는 의미가 무엇보다 우선한다. 미 현직 대통령이 탈북자를 백악..
어제 아침 조선일보 1면에 왼쪽 손발이 없는 탈북자 지성호씨가 트럼프 대통령의 미 의회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목발을 번쩍 치켜든 사진이 실렸다.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12년 전 목발을 짚고 1만㎞의 사선(死線)을 넘었던 용기와 의지에 대한 찬사였다. 트럼프는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북한은 '혁명 수도' 평양에 장애인과 거지가 없다고 자랑한다. 장애인과 극빈자에 대한 북 정권의 반(反)인권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씨가 바로 그 장애인이자 거지 출신 탈북자다. 그는 어린 시절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북 어린이)'였다. 식량을 구하려다 기차에서 떨어져 왼쪽 손발을 잃었다. 그는 '구..
그는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이었다. 밤에는 쌩쌩한데 이른 아침엔 맥을 못 췄다. 나흘에 한 번 숙직하던 1980년대 신산(辛酸)했던 시절, 코까지 심하게 골아 같은 조원들은 그를 피하기도 했다. 아침 6시, 10분짜리 라디오 뉴스는 아나운서가 실로폰을 '딩동댕' 쳐서 지역 뉴스 시작을 알렸다. 전날 밤 퀴즈쇼에서 쓰고 풍금 위에 뒀던 실로폰을 뉴스 시작 전 스튜디오로 반드시 옮겨놓아야 했다. 어느 날 아침 6시 5분쯤 그는 테이블 위에 실로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테이블 뒤에 있는 책장 꼭대기에 있었다. 마이크에서 입을 떼지 않고 그걸 가져오기엔 3평 스튜디오가 너무 넓었다. 그는 입술에 힘을 모았다. 입으로 "딩-동-댕" 한 것이다. 웃음 터진 엔지니어에, 지역 아나운서들이 킥킥대다 뉴스가 엉망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