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파리 특파원에서 서울로 귀임한 지 7년 만의 유럽 여행이었다. 그런데 관광지마다 한국인이 차고 넘쳐 깜짝 놀랐다. 바르셀로나~그라나다 노선 항공기는 승객 절대다수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국내선 항공기를 탄 듯한 느낌이었다. 알람브라 궁전 부근 5성급 호텔은 파격적인 숙박료(1박 12만원)로 충격을 안기더니, 한글 안내문으로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생수(生水)에 영어, 불어, 독일어, 한국어 설명을 붙여놨는데, 한글로 '아직도 물'이라고 써놓은 게 아닌가. 구글 번역기가 영어 'still water'를 오역한 결과였다. 지중해 고급 휴양지의 4성급 호텔에선 '농심 신라면' '농심 육개장 사발면'이라는 이름의 5유로(약 6600원)짜리 룸 서비스 메뉴를 팔고 있었다. ..
'당신이 짊어진, 인생이라는 이름의 배낭에서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십시오(Unpack the backpack of your life).' 자기계발 전문 명강사 라이언이 청중에게 하는 말입니다. 직장인인 그는 가족도 짐이라고 여겨 미혼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데요, 그의 본업이 '덜어내는 일'입니다. '인 디 에어(Up in the Air·사진)'의 주인공인 그는 해고 통고 전문가입니다. 무대는 금융위기 여파로 장기 실직자 수가 폭증한 2000년대 말 미국. 라이언은 미국 곳곳 회사에 출장을 가 사람들에게 해고 사실을 통고합니다. 고도로 냉철해야 하는 임무인데도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알립니다. 그의 태도에선 한 문장에 담긴 플라톤의 인문정신이 묻어납니다. '친절히 대하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
[윤희영의 News English] 마식령스키장 美 생방송에 쏟아진 비난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 생방송을 한 미 NBC 앵커 레스터 홀트가 혹독한 비난에 휩싸였다(be met with scathing criticism). 남북한 올림픽 단일팀 취재를 위해(in a bid to cover the joint Olympic team) 방북해놓고는 체제 선전을 충족시켜주며(feed their propaganda) 알랑거리는(be sycophantic) '솜사탕' 보도만 했다는 맹비난을 받고 있다(be slammed for his 'cotton candy' coverage). 특히 강제 노동(slave labor)으로 지어진 스키장에서 "존중해주는 대접을 받고 있다(be treated with respect)"고 ..
400년 넘게 여자들에게 꼬리표처럼 수식된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난 앞에서 약한 자는 여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란 것. 서던 덴마크대학의 역학(疫學) 전공 교수인 버지니아 자룰리 박사는 지난 8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근(飢饉)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생존력이 더 강했다"고 밝혔다. 세계 어느 곳이든 평균수명은 여자가 남자보다 길다. 우리나라도 갓 태어난 여자 아기의 기대수명은 85.4세, 남자는 79.3세다. 그렇다면 극한 상황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까. 평상시면 몰라도 견디기 힘든 고난이 닥치면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여자가 더 힘들지 않을까. 자룰리 교수는 지난 250년 동안 전 세..
2002년 9월 28일 부산 다대포항에 북한 선박 만경봉 92호가 닻을 내렸다. 북한이 부산아시안게임에 보낸 여성 응원단 290명이 타고 있었다. 키 165㎝가 넘는 대학생과 예술인 위주로 뽑은 응원단은 초승달 눈썹에 하얀 얼굴, 화려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나무 '짝짝이'로 박수를 치고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몇몇은 인터넷에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우리 응원단의 의상과 몸치장은 온 남녘땅의 유행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이때 맛 들였는지 북한은 이듬해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300명 넘는 응원단을 보냈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하루는 비가 내렸는데, 응원단이 "장군님이 비를 맞고 계시다"고 울먹이며 김정일 사진이 인쇄된 거리 플래카드를 떼어갔다. ..
북한이 현송월을 대표로 한 올림픽 예술단 사전점검단 파견을 하루 중지시킨 것은 '대북 제재' 거론에 대한 불만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실무 문제들을 놓고 '대북제재위반'이니 뭐니 하는 잡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북 대표단 체류비용 지원, 고려항공 이용 등에 대해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제재위반 여부니 뭐니 하는 경망스러운 언행들이 북남관계 개선의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 안팎과 언론에서 대북 지원이 유엔 제재와 상충할 가능성이 지적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 참가를 밝힌 것은 현재 수준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면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며, 제재를 각..
올림픽이 정치에 이용된 사례는 드물지 않다. 1896년 아테네에서 첫 근대 올림픽이 열릴 때 이미 프랑스는 앙숙 독일이 나오면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하고, 4년 뒤 이에 대한 반발로 공산권이 불참해 LA올림픽은 반쪽짜리가 됐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은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자국 선수들이 이스라엘과 맞붙게 되면 일부러 철수시켰다. 그러나 종교·인종·정치를 뛰어넘는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올림픽은 여러 논란에도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제전으로 자리 잡아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스포츠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때쯤이면 선수들은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쏟고 언론마다..
지금 곳곳에서 빚어지는 국정 혼선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역주행'일 것이다. 국가 운영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세계가 동의하게 된 최소한의 규칙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길과 거꾸로 가겠다 하고 있다. 시장(市場)과 맞서고 기업을 조이며 정부 덩치를 키우겠다고 한다. 돈 벌기보다 쓰기, 파이 키우기보다 나누기, 미래보다 과거를 앞세우고 있다. '이게 나라냐'는 실존적 의문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 좌파가 원래 그렇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좌파가 반시장·반기업이진 않다. 독일 노동시장을 개혁한 것은 슈뢰더 좌파 정부였다.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을 내걸고 실용 노선을 걸었다. 국익 추구에 관한 한 좌우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 현대 정치다. 유럽식 사민..
"나는 어려 보이는(look too young) 게 너무 싫어. 20세짜리가 수작을 걸어온(hit on me) 적도 있다니까." "나는 튀어 보이고(stand out) 싶지 않은데, 왜 제일 중요한 업무는 꼭 나한테 시키는지(ask me to work on the most important assignment) 모르겠어. 짜증 나 죽겠어(be sick to death of it)." 겸손한 척하면서 은근히 제 자랑하는 것을 'humblebrag'라고 한다. '겸손하다'는 형용사 'humble'과 '자랑하다'라는 동사 'brag'를 합성한 단어다. 노골적인 자기 과시(outright boasting)보다 겸손·불평을 가장한(be disguised as a humility or a complaint) 제 자..
지금 시중의 모임 자리나 소셜 미디어 등에서 오가는 최대 화제는 단연 가상 화폐와 강남 집값이다. 가상 화폐 값이 수십 배 오르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은 자고 나면 몇 천만원씩 뛰고 있다. 상식을 넘어선 과도한 폭등이지만 진정될 기미가 없다. 어떤 이는 대박의 꿈에 부풀고, 다른 사람들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언제나 이런 풍조는 있었지만 최근의 현상은 분명히 선을 넘었다. 300만명이 참여한다는 가상 화폐 거래엔 '누가 몇 억을 벌었다'는 얘기에 자극받은 직장인과 주부, 심지어 10대 고교생까지 뛰어들고 이것이 다시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연쇄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강남·서초구의 집값 상승률은 각각 1.52%와 1.31%로, 지난 2012년 이후 가장 높았다. 강남·송파구의 일부 재건축 단지는 ..